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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를 떠돌았던 지난 18년 동안 마을 공터에서, 또는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덮은 집 마당에서, 도시의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 소리꾼들, 잽이들, 춤꾼들을 만났습니다. 화려한 조명도 좋은 음향 시설도 없는 곳, 정글이나 산속에서, 외딴 섬에서, 때로는 전기마저 없는 곳에서 모닥불이나 랜턴에 의지해서 그들을 찍었습니다.
  
  가난하고 초라한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화려하고 눈부신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셔터를 눌러대곤 했습니다. 꾀죄죄한 남방셔츠 그리고 낡은 바지가 전통의상으로 바뀌는 순간 이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이들의 문명이나 문화가 서구 문명의 꺼풀 속에 가려져 있었던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꽤 오랜 시간 경험하고 여러 번 마음 세척을 한 후에야 나는 그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술가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소리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고 조각하는 장인이었고 잽이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들 예인들을 통해, 그들의 삶과 환경을 통해 아시아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의 시도가 ‘빛과 소리의 아시아 전’입니다. 여기 11개 문화권 726컷의 사진 속에 소리와 춤뿐만 아니라, 그들의 환경과 자연을, 그리고 그들의 삶의 일부를 포함 시켰습니다.
  
  

이 전시회 다음의 일정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집 벽에 신화를 그려놓고 늘 신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일상을, 축제를, 노동을 그림으로 집 안팎에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들의 생업에 필요한 여러 도구에 조각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색과 형상의 아시아를 얘기하려 합니다.

이번에 함께 작업하는 소리채록꾼 최상일을 만난 것은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는 일이 다르되 같은 관심을 갖고 있고, 때로는 몇 년씩 외국의 굿판을 같이 조사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의 소리와 나의 사진이 만나 어떤 효과를 낼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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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쟁이들이 가끔 하는 말 가운데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PD가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자료가 많아도 방송프로그램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방송이 아니라, 전시회라는 방식을 통해 아시아의 소리를 들려주려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소리가 한두 번의 방송으로 내보내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아시아의 네 개 나라를 휘둘러 다녀왔습니다. 방송 일정에 맞추느라 다닐 곳에 비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가 늘 꿈에 그리던 행복한 소리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본 아시아는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 앞에 아시아의 소리가 이렇더라고 자신 있게 내놓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전시회를 하게 되는 것은 아시아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속도가 그만큼 빠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시아가 저를 통해서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지요.
  
  늘 하던 버릇대로 아시아에서도 민속음악, 그 중에서도 민요를 주로 찾으려 애썼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도 하지만, 민요는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꾸밈없는 생각과 정서를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본 아시아에는 우리와 비슷한 노래를 부르는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았습니다. 아시아의 땅덩이가 넓고 다양하듯, 민속음악도 그러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 여행이었습니다.
  
  

제게 아시아는 이제 겨우 쪽문을 한 번 열어주었을 뿐입니다. 아시아의 소리를 제대로 알 수 있으려면 남은 인생을 전부 바쳐도 모자랄 듯한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머뭇거리는 동안 아시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르는 일이라 더욱 조바심이 납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제 스스로 심기일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진가 김수남 대선배님과 함께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은 실로 영광스런 일입니다. 제가 이만큼이라도 아시아를 알게 된 것은 오로지 멀찍이 앞서가는 선배님을 곁눈질한 덕입니다. 사뭇 다른 분야의 후배에게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영감을 불어넣어주시는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