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유산보호협약 제정 활동

Working towards a Convention

"유네스코는 2004년 제 32차 총회에서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을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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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cessional Giants and Dragons in Belgium and France
< Processional Giants and Dragons in Belgium and France © Mairie de Douai >

1960년 시작된 이집트의 누비아 캠페인 (Nubia Campaign) 이후, 유형유산 분야에 한해서이지만 '인류의 유산'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는 정책적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누비아 캠페인은 국제 여론을 보호 활동에 우호적인 것으로 바꾼 가장 성공적인 사례였다. 2년 후 원래의 위치보다 64미터 위로 옮긴 아부 심벨 (Abu Simbel) 사원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기념물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또다른 활동은 1962년 시작된 베네치아 보호 캠페인, 혹은 1968년 11월 19일 유네스코 총회가 채택한 '공공 또는 민간 사업에 의해 위험에 처한 문화재 보존에 관한 권고 (Preservation of Cultural Property Endangered by Public or Private Works)'였다. 이어 1970년에는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 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었다.

이처럼 법적 효력이 있는 캠페인 및 활동은 문화가 경제발전에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을 드높였다. 탈식민화 과정과 냉전이라는 정치적 배경 속에서 문화의 제도적·행정적·재정적 측면에 대한 정부간 회의 (Intergovernmental Conference on the Institutional, Administrative and Financial Aspects of Culture)가 1970년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문화적 발전 (cultural development)'과 '개발의 문화적 차원 (cultural dimension of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문화정책이 개발 전략에 어떻게 통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이 회의는 또한 민족 문화의 다양성, 고유성, 독창성 등이 인류의 진보와 세계 문화 발전의 필수적인 토대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 회의는 자원·훈련 기관·훈련 받은 인력이 부족하여 문화 유산 보존 활동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많은 나라의 토착 문화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또, 회원국은 비정부기구가 가능한 한 밀접하게 문화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문화 분야에서 비정부기구와의 협력을 위한 기초를 세웠다.

유네스코는 저작권과 문화재 보호 분야의 활동 외에 1952년 협약, 1954년 협약, 1970년 협약에 언급된 바와 같이 유산과 문화 산업을 발전 정도와 무관하게 모든 회원국에서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서 증진하고자 했다.

유네스코는 1972년 아프리카의 구전 전통과 아프리카 언어의 증진을 위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제 1회 태평양 예술 축제 (Festival of the Arts of the Pacific)가 피지에서 열렸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두 가지의 문화 연구 사업이 시행되었다.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유형문화 분야에만 엄격하게 한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72년, 유네스코는 1966년 선언, 누비아 캠페인의 성공, 1970년 베네치아에서 수립된 원칙 등을 기초로 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협약을 채택하였는데, 바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이었다. 이 협약은 오늘날 문화유산 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인 법규로서 유산의 범위를 기념물, 건물군, 지역군 등 모든 유형유산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문화유산을 유형유산으로 보는 시각을 강화시켰다. 이 협약은 헤이그 협약처럼 부동산 문화유산 (이 경우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요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인류의 유산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세계유산협약은 등재 제도 (listing system)와 협약 이행을 위해서, 개정이 가능한 운영 지침을 바탕으로 실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유산보존 정책을 강화하였고, 보존 정책을 개발수단 --주로 관광을 통한 개발--에 포함 시키는 표준적인 준거가 되었다.

집단적인 지적재산권의 법적 측면들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유산협약에는 무형문화유산 표현물이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볼리비아 정부는 1973년 민속 보호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세계저작권협약 (1971년 개정)에 추가 의정서를 제안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년 후 유네스코와 세계지적재산권 기구 (WIPO)의 지원을 받아 튀니지에서 정부 전문가 회의가 개최되었고, 문화적 표현물에 적용될 수 있는 지적재산권의 보호에 관한 시범 법안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한편, 1970년 베네치아 회의의 후속으로 여러 지역 세미나가 열렸다. 이 중 하나인 아프리카 문화정책에 관한 아크라 정부간회의 (Accra Intergovernmental Conference on Cultural Policies in Africa, 1977)에서 전문가들은, 문화라는 개념은 순수예술이나 유산을 넘어 세계관, 가치 체계, 신념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년 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정부간 문화정책회의가 채택한 보고타 선언 (Bogota Declaration)에서는 문화 발전을 통해 공동체와 개인의 삶의 질이 개선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이 선언은 문화적 진정성 (cultural authenticity)이란, 지리적 기원이 무엇이든, 어떤 식으로 문화적 혼성이 이루어졌든지 간에 문화적 정체성의 구성 요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모든 민족이나 집단이 자신의 문화적 선례와 개인적 가치 및 열망 그리고 자율 의지에 따라 독립적으로 문화 정체성을 결정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