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호를 위한 유산의 지정(指定)
협약은 개방적 문서로서 조항 대부분은 비규범적인 용어로 되어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유연하게 협약을 이행할 수 있다. 그러나 목록 작성은 협약과 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이 정한 구체적인 의무 중의 하나이다.
협약은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필수적이다. 무형문화유산과 유산이 개인과 집단적 정체성에 부여하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유산 목록의 작성 과정과 대중들이 그 목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은 무형문화유산의 표현물과 관습을 낳은 공동체와 개인의 창의성 및 자존감을 배양할 수 있다. 목록은 또한 관련 무형문화유산의 보호 계획을 수립의 기초가 될 수 있다.
협약 제 11조에 따르면, 각 당사국은 자국 영토 내 무형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무형문화유산의 지정과 정의에 공동체, 집단, 관련 비정부기구를 포함시켜야 한다. 유산에 대한 지정은 하나 이상의 구체적인 무형문화유산을 그 자체의 맥락에서 설명하고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이다. 지정과 정의 과정은 목록 작성으로 이어져야 하며 목록 작성은 보호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즉, 목록 작성은 추상적인 활동이 아니라 수단적인 (instrumental) 것이다. 따라서 일정한 수의 무형문화유산을 이미 지정했다면 당사국은 그와 같은 유산을 위한 보호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협약은 국가가 목록 작성에서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국 영토 내의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하나 이상의 목록을 작성할 것과 정기적으로 목록을 갱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제 12조). 제 11조와 제 12조는 협약의 다른 조항보다 훨씬 규범적이지만, 당사국이 목록을 어떻게 준비할 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유연성을 제공한다. 당사국은 자국 나름의 방식으로 목록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은 보호 조치를 충분히 실행할 수 있도록 잘 정의되어야 한다.
많은 국가가 오랫동안 해 온 사항이기는 하지만, 당사국은 협약 비준 전에 하나 이상의 목록을 미리 작성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목록의 작성과 갱신은 결코 끝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의 과제이다. 지원이나 협약 목록 등재를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반드시 목록을 완성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협약 이행 운영 지침은 긴급보호목록이나 대표목록 등재를 위해 신청서를 제출한 국가의 경우 신청 대상이 되는 유산이 자국의 무형문화유산목록에 포함되어 있음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나라마다 인구, 영토, 무형문화유산의 분포 면에서 큰 차이가 있고, 정치적·행정적 구조가 다양하기 때문에 협약은 각 당사국이 상당히 자유롭게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목록을 작성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렇게 되면 국가적·지역적 조건이나 관심사를 고려할 수 있다.
협약에 열거된 보호 조치 가운데 연구와 기록화 (documentation)는 당사국이 자국에 무형유산이 있고 누가, 왜 그 일을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첫 번째 전략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당사국은 이를 위해 관련 기관, 연구자, 공동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국가 무형문화유산 보호 위원회를 설립하여 공동체와 연구자들 사이의 대화를 원활히 할 수도 있다.
국가는 단일하고 포괄적인 목록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소규모의 비교적 엄격한 목록을 만들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협약이나 운영지침은 '단일한 국가목록 (a national inventory)'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하나 이상의 목록 (one or more inventories)'이라 표현한다. 이처럼 국가는 모든 유산 영역이나 공동체를 단일 체계 안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 이 목록은 기존의 등록부 (registries)나 카탈로그를 포함할 수 있다. 특히 복수의 목록을 작성하는 방식은 문화에 대한 책임이 중앙 정부 영역 밖에 있어 하위 지역 단위나 지방에서 자체 목록을 만드는 연방국가에 알맞다.
전통 보유자와 실연자의 참여
협약은 각국이 자유롭게 무형문화유산의 목록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조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참여와 관련된 것이다.
공동체는 무형문화유산을 창조하고 살아 있도록 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유산 보호에 있어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무형문화유산을 실천하는 공동체들은 유산을 지정하고 보호하는데 있어 그 밖의 주체들보다 훨씬 적합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이들은 목록화를 통해 무형문화유산의 지정에 참여해야 한다.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협약의 정의는 무형문화유산을 공동체, 집단, 개인이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들이 아닌 어느 누구도 특정 표현이나 관습이 그들의 유산이라고 결정지을 수 없다. 따라서 목록 작성이 유산을 지정하고 정의하며 유산의 보유자인 공동체, 집단, 개인의 참여 없이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때로 공동체 스스로 목록 작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수단을 지니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당사국이나 관련 기관, 기구 등은 이들이 자신의 살아 있는 유산을 목록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기록화는 지금의 무형문화유산을 가시적으로 기록하고 관련 문서들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이 작업은 다양한 기록 수단과 형식을 사용하고, 수집된 자료는 도서관, 아카이브, 웹사이트 등에 보관, 제공함으로써 관련 공동체와 보다 많은 대중들이 의견을 제시하도록 한다. 그러나 공동체와 집단은 노래책이나 신성한 문헌, 직물 견본, 디자인 책, 성상 (icon), 그림 등 무형문화유산 표현과 지식을 담은 전통적인 형태의 기록물도 보유하고 있다. 창의성을 진작하고 자료를 전파하기 위해 공동체가 만든 혁신적인 기록 노력과 프로그램은 입증된 보호 전략 중의 하나로서 점차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제 13조 라항 (2)호는 당사국이 무형유산에 접근할 때 그와 관련된 관습적 실천들을 유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어떤 경우에 특정한 무형문화유산이 목록화로 드러나서는 안 되거나 이미 목록에 있는 어떤 무형문화유산이 특수한 제한 하에서만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공동체는 민감한 주제를 목록에 상세히 기록하기보다는 특정 지식의 관리자가 누구인지만 알려주면 된다. 목록에 등재된 무형문화유산의 정보 제공은 그 유산에 대한 접근을 더욱 용이하게 한다. 협약의 정신에 따르면, 목록에 무형문화유산이 오르는 것을 거부하는 공동체의 의지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이미 일부 당사국은 적극적으로 무형문화유산 전승자들이 속한 공동체와 관련을 맺고 있지만, 상당수의 목록 작성 작업이 아직도 공동체의 참여에 관한 협약의 규정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공동체 외부의 조직이나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협약에서 요구하는 무형문화유산의 생명력 보장이 목적이 아닐 때도 있다.
당사국은 목록 작성 과정에 공동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제도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에는 기존의 관련 입법, 제도, 전통적인 보호 체계, 모범 사례와 개선 영역 등을 평가하기 위한 초부문적 (intersectoral) 행정기구 설립이나 지정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기구들은 무형문화유산 목록 작성, 보호정책수립,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사업개발, 목록과 보호에 대중의 참여 유도를 책임진다. 행정조직은 필요한 경우 목록에 포함된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당사국은 또한 실연자, 전통 보유자, 연구자, 비정부기구, 시민사회, 지역 대표, 공동체 대표를 포함한 지역 지원팀, 문화활동가, 그리고 훈련과 역량강화 관련 기술과 식견을 지닌 사람 등으로 구성되는 자문단 또는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 무형문화유산 목록 작성 방법은 모든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그들의 참여 속에 서로 보조를 맞추어 수행해야 한다. 목록 작성에 따른 잠재적인 결과, 이해관계자와 관습적 실천 사이의 윤리적 관계를 보장하는 절차, 무형문화유산 접근에 대한 관리 등도 설명이 필요한 사항들이다.
목록 작성은 지역 공동체, 정부, 비정부기구가 참여하는 상향 과정인 동시에 하향 과정이어야 한다. 당사국이 공동체의 참여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 공동체, 집단, 그 대표들의 적정한 유산 지정 작업
- 공동체나 집단이 인정하는 무형문화유산만을 대상으로 한 목록 작성
- 목록 작성에 앞서 공동체와 집단의 자유 의사에 따른 사전 동의 의사 획득
- 공동체 외의 구성원 참여 시 공동체의 동의 획득
- 무형문화유산 접근과 관련된 관습 존중
- 지역 정부와의 적극적인 관계 설정
- 윤리 강령을 제정, 준수하여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고려